크리스마스의 비극

그러나 이와 같이 순수한 취미로만 하고 있는 아마추어선도 언제나 취미로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전파라는 것은 언제나 공공 위한 것이며, 결코 어느 개인에게 독점될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공공물 자유로이 이용하고 있는 햄들은 항상 국가와 사회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일단 비상사태가 일어나 사회가 그들의 활동을 요구할 때에는 언제나 사회를 위하여 온갖 봉사를 아끼지 않는다.

1964년의 알라스카의 대지진은 세계에 이미 널리 알려진 바로, 지진의 피해는 대부분의 통신망과 송전선을 파괴하고 말았었다. 전화선의 불통 말할 것도 없고 대규모의 무선 시설들도 송전선의 파괴로 전기공급이 끊어지면서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고 말았다.

집이 무너져 이재민은 대량으로 발생했고, 거기에 부상자가 속출하고, 교통도 여의치 못하고, 흔란속에서 햄들은 평소의 그들의 기술과 시설을 총동원하여 일어섰다. 아마추어 무선국의 시설은 개인적인 것이므로, 규모에 있어 본격적인 상업무선국과는 비교도 안되게 작다. 그러나 대신 송전선이 끊어지면 소형 발전기로, 나마도 없으면 지동차 바테리만으로도 충분히 동작한다. 그리고 이런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모든 햄들은 형상시부터 비상 통신의 훈련을 설시하고 있는 것이다.

"OSO OSO CQ 뉴욕 CQ 눈욕, 여기는 KL7...."

"OSO" 비상통신임을 표시하는 부호로, 배의 조난을 표시하는 조난신호 SOS 뒤집어 놓은 것이다. OSO 신호만 나오면 OSO통신에 관련치 않은 모든 아마추어국은 일제히 송신을 절제하고 OSO통신중인 햄을 도와주기로 되어 있다. 라스카와 뉴욕이 연결되지 않으면, 캘리포니아의 햄이, 텍사스의 햄이, 경우에 따라서는 바다건너 뉴우질랜드의 햄이 자진하여 중계 역할을 담당한다.

라스카의 경우, 햄들의 활동은 지진의 시작과 동시에 시작되였다. 앵커리지와 본토와의 연락망을 구성하고, 앵커리지와 알라스카내의 지방과 통신망을 확립하고, 그들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수십만통의 전문을 전달했다. 관청간의 문서, 신문사의 신문 전보, 적십자사의 구호 연락, 피해 상황의 수집과 보고, 알라스카에 가족을 본토 사람들의 안부 전보 등등 그들의 비상통신은 열흘이 넙어도 계속되었다. 시내 연락조차 여의치 않을 때는 모빌 햄이 동원됐다.

1972 12 22. 금요일날의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구아"시를 순간적으로 폐허로 만들은 대지진은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지진의 발생과 동시에 모든 전원이 파괴된 속에서, 소식을 재빨리 외부로 알려온 것은 "마나구아"시의 햄들이였다. 다음은 미국아마추어선연맹의 기관지 QST 1973년 4월호가 전한 "마나구아" 지진의 현지 보도이다.

1972 12 22.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구아"시는 무척이나 바쁜 곳이었다. 엇보다도 도시는 중앙 아메리카에서도 가장 수도였고, 인구는 25만을 넘고 있었다. 거기에 이날은 보통의 긍요일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주말이 시작되는 날이였고, 대부분의 "마나구아" 시민들은 중심가에서 흥청대고 있었다.

시가지를 8km 내려다 보이는 " 카스타네라"씨 가족은 자정이 되어 침대에 들었다. 니카라과 위성통신 중계소장인 "환"은 1939년부터의 오래된 햄으로, 지금은 YN1CX 국장이기도 하다. 0 30분. 가족은 세계를 놀라게한 강렬한 지진이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집은 크게 부서지지는 않았으, 선반에 있는 것은 모조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전기와 수도가 끊어져 있었고, 전화는 불통이며, 시가지는 여기 저기서 불꽃이 일고 있었다.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자, 그는 사실을선을 통하여 외부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느꼈다. 그의 l00왓 송수신기는 12볼트 바테리 전원으로 동작할 있게 설계되어 있었으나, 한번도 바테리로 동작시켜 본 일이 없었다. 그는 기계를 그의차의 바테리에 연결하고, 안테나를 연결하여, 지진 발생 2시간 후에는 전파를 수가 있었다. 그러나 2시 반의 한밤 중에는 거의 들리는 국이 없었다. 그는 우선 14메가대에서 "CQ Emergency U.S.A." 불렀다.

한시간 후인 3 30분. 펜실바니아주 베들레햄에서 무심코 다이얼을 돌리고 있던 "돈 휠크스" K3FHP 우연히 신호를 잡았다. "환"은 즉시 "돈"에게 워싱턴의 위성통신 쎈터에 전화를 걸어줄 것을 부탁하고, 마나구아시가 지진 때문에 화재와 파괴의 도시로 변했음을 통고해 달라고 부탁했다. 신호는 점점 약해졌고, 통화가 시작된지 15분후에는 끊어지고 말았지만, 소식은 "돈"에게 완전히 전달되었고, 이것이 공포의 도시 마나구아에서 외부로 전해진 지진의 소식이었다.

K3FHP "돈"은 즉시로 위성통신 쎈터로 전화를 했고, 소식은 다시 버지니아주에 있는 위성통신 니카라과 지부 당당관 " 요웬" WN4VHQ에게 전달되었다. " 오웬"은 " 허긴스" W3YY 깨웠고, "빌"은 즉시 그의 아마추어 무선국을 운영하기 시작하여, 니카라과에서 워싱턴과의 신을 위하여 상대를 찾고 있던 YNlDUX "얼 무어"와 교신이 이루어졌다. 얼의 통신은 발전기의 소음때문에 여러번 끊어지기는 하였지만, 수분 후에는 니카라과 주재 미국 대사의 통신문을 워싱턴 미국무성으로 전달할수가 있었다. 그는 또한 주미 니카라과 영사관에 모국의 첫소식을 전하기도 하였다.

YNlDUX ""은 다응에 혼듀라스의 햄을 통하여, 듀라스의 데구시갈파시에 있는 미 육군과 연락하였고, 소식이 전해진지 30 후에, 미 육군은 구조 비행기를 마나구아시로 보냈다. 그러나 비행장의 활주로 표시등은 모두 꺼져 있었고, "얼"은 다시 자동차를 몰고행장으로 달려가 활주로를 따라 달리면서 장애물의 유무를 확인하는 일 까지도 하였다. 비행기는 "얼"의 노력으로 겨우 착륙할 있었고, 다음 날까지는 10대의 비행기가 착륙할 있였다.

마나구아의 비극은 이렇게 하여 세계에 알려졌다. 사건 직후, 사상자수는 알수 없었으나, 실 눈으로 보고 보도하는 햄들로 부터의 소식으로 비극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실감할 있었다. 후에 지진은 강도 6.5 대지진이었고, 만명이 죽었으며, 10만의 이재민을 내었음이 알려젔다. 어제 저녁에 크리스마스 주말을 즐기려고 숍핑에 바빴던 도시는 하루밤 동안에 폐허가 되고 말았다.

햄의 전파로 세계에 비극을 알리는 소식을 전한 YN1CX "환"은 걸건너 위성통신 중계소로 갔다. 그리고 정전 이외에는 아무 사고도 없이 기계가 남아 있고, 전기만으면 동작할 있음을 알았다. 시간후, 중계소는 비상 전원으로 가동을 개시, 미국과의 통신을 재개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전화국이 완전히 붕괴되어, 시내 통신망은 거의 두절상태여서 위성중계소의 가동은 별로 통신에 도움을 수가 없었으며, 비상통신의 모든 중책은 완전히 자가용 발전기나 자동차 바테리를 이용할 있는 마나구아시 주변의 햄들의 어깨에 걸려 있게 되고 말았다.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지만, 비상통신망이 구성되기까지는 동안의 시간이 걸렸다. 파괴된 도시에서의 첫날은 거의가 개인 개인의 햄의 역량에 맡겨져 있었으며, 그들은 자기 주변에 있는 동작 가능한 모든 기계를 사용하고 있었다. 몇몇은 무너지면서 기계도 모두 파묻혔지만, 상하게도 안테나는 거의가 살아 있었다 . 그러나 통신은 오히려 햄들이 없는 곳에서 필요하였고 대부분의 통신은 이동국에서 취급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지진이 일어난 남아 있는 건물 속도 안전하지는 못하였으므로 거의 모든 햄국은 야외의 텐트 속에 설치할 수 밖에 없였다.

마나구아의 햄들이 전파로, 또는 직접 만날 있게 되자, 조직적인 통신망이 이루어져 갔다. 비상통신부가 전 대통령이며 아직도 정부의 요직에 있는 "쏘모사"씨 저택에 차려졌다. 이 곳에 YNlRB "버뮤데즈" 장군이 23 아침에 100왓전기와 자동차용 안테나로 햄국을 설치하였으며 이것이 정부를 대표하는 유일한 무선국이었다. 크리스마스날 아침에는 80km 북서쪽의 레온시로 부터 YN3RBD "" 한사람의 햄인 "찰스"가 이곳으로 달려와 YNlRB 도왔다. 무선국은 YNINIC(니카라과의 첫자를 딴듯) 호출부호를 바꾸고, 출력도 1킬로왓트로 증강되였으며, 지향성의 정식 안테나를 갖출 있었다. 버뮤데즈장군은 국가비상위원회 YNINIC 중계 되어, 대부분의 정부통신을 책임지게 되었다.

마나구아시로부터 13km 떨어진 로스 브라질 공항으 부터의 식량과 의약품의 공급에도 햄들의 협조가 펼요했다. 여기에서는 이웃나라 파나마의 아마추어선연맹에서 파견 HP1LR/YN1 햄들이 활약했다. 라스 파마스시로 부터의자 공급은 역시 이웃의 과테말라에서 파견된 햄들이 TGφAA 활약하였다.

대부분의 구조활동 미국 매서츄세스주의 로져(WA1KZE, 15세) 한스(WA1NRV, 16) 형제의 공이 켰다. 사고 첫날 WA1KZE 호출부호로 그들은 대부분의 의료 통신을 도왔고, 전국적으로 협력을 호소했다. 결과 니카라과를겠다고 많은 의료원이 지원하여 나섰고, 그들을 모아 완전한 의료진을 구성 할 수가 있었다. 아메리칸 항공사는 27일에 이들을 보잉 707기로 마나구아로 무료로 수송하였고, 착륙허가는 YNINIC 통해 직접 받을수 있었다. 비행기는 50명 의사와 2만 결레의 구두와 많은 양의 식량과 의약품을 실어 날렀다. 형제들의 노력은 비행기가 이륙한 후에도 계속되어, YN4WLD 협력으로 의사 들과 물자들을 구호터가 있는 레온시까지 실어 날을 10대의 트럭을 공항에 대기 시키기까지 하였다. 형제는 WA1NII, WA1JHQ들 도움을 받아가며, 크리스마스 휴가를 마나구아와의 통신에 바치고 말았다.

공공통신 시설이 완전히 사용 불능이 되였을 경우, 언제나 햄들이 제일 먼저 해야 일은 필요한 구조 물자를 모으는 일과 공공통신을 수행하는 일이다. 다음으로 해야 것은 서로의 소식을 궁굼히 여기는 사람들의 생사의 안부를 전하는 일이다.

니카라과 아마추어무선연맹은 대학 구내에 그들의 본부국을 설치하고, YNlUCA YN1YN 호출부호로 햄용 주파대를 모두 동시에 이용하면서 15,000 이상의 통신을 취급 했다. 마나구아 시내의들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이동용 워키 토키나 차량용 무전기는 총동원되어, 고정국과 시내를 연결 하는데 사용했다. 특히 초단파용 워키키는 역활을 하였다.

특기 할만한 햄중에는 YN1JMP "파라욘" 여사가 있다. 기계 고장이 잦은 가운데서도 "파라욘"여사는 그의 남편 YNlGPD 회장으로 있는 기독교 비상구조위원회의 구조 통신을 2주일간이나 잠시도 쉬지 않고 전달했으며, 다시 l주일동안을 특별 스케줄 통신에 협력하였다. 여자의 통신내용 속에는 미국 애틀란타시에 있는 미국 의료쎈터와의 전화 연결 통신(햄의 송수신기와 전화기를 직결시켜 제3자와 직접 통화시키는 ) 수백통의 안부통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외부로 부터 마나구아시로 처음으로 날아온 햄들의 팀은 마이아미에 있는 스페인어 햄 클렵의 회원들이였다. 미국에서 스페인어에 능통한 햄들의 모임인 클럽에서는 회원 7명을 마나구아로 보내어, 현지로 부터의 통신을 돕도록 하였다. 이들의 도움은 지대한 것으로 특히 영어가 안통하는 햄들을 돕기 위한 이러한 배려는 적중하여, 그들은 5일간에 1,200 이상의 통신문을 취급할 있였다.

이외에도 지진에 관하여상통신을 수행한 햄들의 수는 기록된 것만도 수백명을는다. 캐나다에서는 VE1ASJ 활약했고, 파나마 운하지대의 캐널 존에서는 KZ5USA 도왔다. 그외 멕시코에서, 콜럼비아에서, 주변의 모든 나라의 햄들이 수주간이나 계속된 비상통신을 통하여 모두가보수 봉사를 제공하였다. 특히 니카라과의 국내 햄들은 그들 자신이 피해자이며 집을 잃었으면서도 많은 시간을 비상통신에사히여 수천, 수만의 통신문을 전달했다. 다음의 가지는 그중의 일예이다.

지진이 일어난 아첨. 콜럼비아의 HK3BQP, 멕시코의 XEICW, 캐널 KZ5USA 구조물자의 비행을 도와 백여개의드를 가진 이동병원과 통신팀을 캐낼 존으로부터 실어나를 었고, 콜럼비아로부터는 하나의 이동병원과 400 혈액을 실어날랐다.

미국 휴스턴에 있는 햄들은 그곳에 있는 니카라과 영사관의 요청으로 영사관 내에 본격적인 햄국을 설치하고 YN1ARG/W5의 호출부호로 마나구아의 정부를 대표한 YN1NIC와의 통신망을 제공하였다. 이와 같은 영사관에의 협조는 그외 여러곳에서 제공되였으며, 필라델피아에서는 K3JH, 달라스에서는 WA5YAS, 뉴우 오레안스에서는 W5KSI,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W6HVN 이런 협조를 제공하였고, 미국뿐 아니라 아르헨티나 외무부도 니카라과주재 대사관과의 연락에는 햄국을 이용할 밖에 없었다.

여기에 열거된 햄들의 이름은 국제아마추어선연합의 회장인 WφDX 현지로 급히 날아가, 비상통신을 함께 도와주면서 메모한 전체 인원중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니카라과 지진때의 햄들의 활약은 햄 역사상 가장 대규모 작전으, 가장 많은 나라에서 가장 많은 햄들이 서로 돕겠다는 인류애로 결합되어 이룩해 놓은 비상통신의 페이지였고, 소에는 각개인의 취미에 불과한 아마추어선이, 평소부터 육성되어다면 비상시에 얼마나 중요한 일을 있는가를 여실히 증명해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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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례